After Us
류지민 Ryu Jimin
2026. 05. 09 ~ 05. 16 SEOUL
2026. 05. 22 ~ 05. 24 BUSAN
Introduction 비평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눈을 갖는 데 있다.”
-마르셀 푸르스트
비평은 종종 어떤 오해를 풀기 위해 쓰인다. 여기서 풀고 싶은 오해는 무엇일까. ‘AI를 활용하여 완성한 그림은 예술적 가치가 떨어지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그럴 리 없다. 본 글은 한 작가의 꾸준한 작업 과정에 침투한 AI라는 새로운 매체가 오히려 어떤 미술사적 시의성을 획득하는지, 그리고 작가의 작업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 밝히고자 한다.
흔들리는 증인과 합성된 기억의 필연적 조우
김진혁(큐레이터, 시각 문화 탐구자)
류지민의 작업은 오래전부터 ‘기억의 불안정성’이란 화두에서 출발했다. 기억은 비물질적이며 시간과 함께 휘발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사람들은 기억이 한때 이곳에 존재했음을 증명하고자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활자로 기록해왔다. 무엇보다 기억의 강력한 증거가 되어온 것은 사진이었다. 사진은 '그때, 그곳'의 실재를 시각적 증거로 남김으로써 언제나 기억의 증인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이 증인의 신빙성에 균열이 가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 일상으로 흘러들어오면서 우리는 사진, 즉 기억이 봉인된 이미지의 진본성을 의심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때 그곳에서 정말 발생했던 사건,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을 증언한다고 여겨졌던 사진조차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에 작가는 좌절하는 대신, 이와 같은 동시대적 조건을 작업 안으로 수용한다. 그로 인해 작업의 과정은 복잡해지며, 예측할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이 개입된다. 작가는 먼저 자신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 기억들은 언어로 발화되고, 챗지피티 ChatGPT로 대표되는 거대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을 거쳐 문장으로 정리된다. 이 문장들은 미드저니 Midjourney 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로 변환된다. 이렇게 생성된 이미지들은 작가의 직관에 의해 재조합된다. 결과적으로 합성 이미지(Synthetic Image)와 작가의 “스타일”은 손으로 다시 그려지며 서로의 간극을 메우기도 하고, 때로는 그 균열을 드러내기도 하며 하나의 화면을 완성한다.
이때 화면은 작가 개인의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주체의 기억을 그대로 복원하거나 특정한 타자의 기억을 직접 불러오지는 않지만, 한 주체가 단독으로 맞닥뜨릴 수 없는 방대한 이미지 데이터를 학습한 뒤, 입력된 언어를 바탕으로 이미지가 성립할 가능성이 높은 시각적 패턴을 확률적으로 생성한다. 그리하여 작품은 인류가 문화적으로 공유해온 이미지 관습과 시각적 패턴의 통계적 흔적을 통과하며 변형된다. 예컨대, <애프터 어스 After us>(2026)의 중심에는 의자들이 놓여 있다. 그중 가로로 긴 소파 위에는 마치 그것을 토양으로 삼은 듯 식물이 자란다. 식물은 씨앗에서 출발해 줄기를 뻗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존재다. 이처럼 시간의 축적을 전제하는 생명이 일상적인 가구 위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현실의 논리와 어긋나며, 초현실적이고 무언가 사라진 듯한 폐허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 주위를 채우는 물, 홍학, 허물어진 벽과 빛 또한 서로 쉽게 연결되지 않는 요소들이지만, 어딘가에서 한 번쯤 본 듯한 기억의 파편처럼 놓여 있다. 결국 류지민이 재구성한 이 화면은 서로 다른 시간과 기억들이 중첩된 이미지를 다시 현재의 장면으로 떠올린다.
한편, 이 지점에서 저자성의 문제는 새롭게 제기된다. 이렇듯 생성형 인공지능이 이미지의 형성 과정에 실질적으로 개입한다면, 과연 작품의 저자성을 작가 한 사람에게만 귀속시킬 수 있는가. 그러나 저자성은 제작 과정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성립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작품의 의도와 의미를 설정하고, 그 결과물을 자신의 이름으로 책임지는 위치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공지능은 이미지를 생성할 뿐, 그 이미지의 의미를 의도하거나 책임지는 저자라고 보기 위해서는 보다 신중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때 요구되는 건 바로 저자와 행위자의 구분이다. 인공지능은 저자는 아니되, 작가와 함께 이미지 생성 과정에 개입하며 결과물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비인간 행위자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더 먼 과거에 발터 벤야민이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예언했듯, 오늘날 인공지능이 행위자로 개입하는 예술작품과의 조우는 필연적이다. 류지민은 그 필연을 자신의 작업 안으로 기꺼이 동참시키고 있으며, 이제 예술이라는 긴 여정에서 필요한 것은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다.
Artwork (대표작)
Installation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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