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지 않을
이 모든 것 들
- 약간 슬픈 동화 -
KIMI
2024. 04. 27 ~ 2024. 05. 25
Introduction
- 영원하지 않을 이 모든 것 들 -
KIMI
< 약간 슬픈 동화 >
키미는 울산의 공장지대에서 자랐다. 길게 늘어선 공장 맞은편 주거단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는 [영정1] 틈만 나면 공장 반대편의 동산으로 향했다. 작가는 공장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었다며, 그때부터 풀이며 물이며 자연이 좋았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 그리는 그림들이 공장 반대편에 있는 것들에 대한 얘기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고 이제 키미 작가는 부산에 산다. 그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마다, 여기가 어느 나라인지 모르겠다며 신기해한다. 알록달록하고 어린아이 같은 패턴이 사방에 걸려있다. 식물이 많다. 책 사이에 풀 인형이 끼워져 있다. 작가를 둘러싼 모든 것이 선명하다. 선명하다는 건, 지금 해가 강하다는 말이다. 정오이거나 한여름처럼, 혹은 잘 익은 과일처럼 모든 것이 선명하다. 그가 원했던 것은 잘 익은 과일처럼 선명한 세상인 것 같다. 공장에서 멀리 떠나온 국적 없는 세상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전시 제목이 “영원하지 않을 이 모든 것들”이다. 키미는 원했던 세상에 직접 거주하면서 그곳을 닮은 그림을 그린다. 전시 제목이 파라다이스여도 이상하지 않다. 왜 그는 갑자기 “힘 빠지는 얘기”를 하는 것일까? 작가는 슬퍼하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소중한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아서 슬퍼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는 슬퍼하고 있지 않다. 단지 산책을 하고 있을 뿐이다. 벚꽃이 핀 터널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 높은 나무에 둘러싸인 작업실로 향한다. 산책하면서 주위의 사물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을 아이 같은 태도로, 어느 국적에도 속하지 않을 이미지로, 어쩌면 동화 나라의 문법으로, 어설픈 포즈로 변형한다. 그는 아기 코끼리 사진을 굳이 찾아보면서, “너무 작은데 크고, 못생기고 귀엽고 웃기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흔해빠진 사물”의 어설픈 면을 찾아 그림으로 그린다. 그가 만드는 나라는 어설프고 웃기고 귀여운 나라다. 작가가 애정하는 장면이자, 오래 간직하고 싶은 풍경이다.
메멘토 모리는 두 가지 방식으로 암시될 수 있다. 하나는 책상 위에 두개골을 올려놓는 것. 바니타스에는 해골과 화려한 정물들이 그려진다. 그것을 매일 보면서 자신의 끝을, 영원하지 않을 모든 것을 떠올릴 수 있다. 바니타스와 정반대의 방식으로는 춤을 추는 장면을 선명한 색으로, 원초적인 즐거움의 장면을 투박한 외곽선으로 그리는 것이 있다. 동화적인 묘사는 종종 원초적인 장면을 떠오르게 하고, 그건 한 바퀴 돌아 메멘토 모리를 암시한다. 바니타스를 그리건, 동화를 그리건 결과는 같다. 끝과 지금을 동시에 가리킨다.
여전히, 작가는 산책을 하고 있다. 흔해빠진 사물을 모아 작은 그림으로, 원색의 공간으로 상상한다. 이 공간은 해가 지지 않을 원색의 공간, “오래 기억하고 싶은 풍경”이다. 물론 문장을 한없이 늘리고 현재진행형 어미를 사용해 작가의 산책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굴어도 끝이 다가오는 것처럼, 흔해빠진 사물을 모아 박제해도 그것이 영원한 건 아니다. 그림으로 그려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러니 이건 영원이 아닌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이 영원이 아니라 순간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실 춤도 사랑도 초록색 자연도 아니다. 이들은 오래 기억될 것처럼 그려지지만 그 얇은 표면 아래에서 다음의 사실을 암시한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짧은 것은, 그러니까 영원하지 않을 것은 바로 산책이고 발걸음이고 흘러가는 시간이다.
- 정영수 비평가
Artwork
이현 작가 작품이미지 업로드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