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FORT ZONE
백주미 (JOO MEE PAIK)
박성환 (SEONG WHAN PARK)
February 17 - March 09, 2024
Introduction
백주미, 박성환 2인전 《컴포트 존》
의식의 탐험가들
홍예지 미술비평가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 앉아 창밖에 흘러가는 것들을 본다. 남자, 여자, 아이, 또 아이, 여자, 남자, 운동화, 구두, 백팩, 핸드백,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빼꼼 얼굴을 내미는 간판들. 유리창에 비친 몸 위로 겹쳐지는 거리. 다들 바삐 움직인다. 깜빡이는 불빛, 날아가는 새, 열리고 닫히는 문, 빠르게 속삭이며 지나가는 커플, 땅에 끌리는 발소리, 오토바이 소리. 모두 뒤섞이다가 이내 흩어진다. 나는 여기 안쪽, 창가 자리에 앉아 있다. 반듯한 나무 의자의 견고함이 마음에 든다. 이 안정감. 내 주변은 창밖과 다른 리듬으로 움직인다. 흔들흔들 스윙 재즈가 깔린다. 연주 위로 올라타는 말소리. 옆자리, 뒷자리,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웃음소리. 비틀비틀 걷는 걸음걸이. 규칙적인 듯 불규칙한 리듬. 사실 나는 가만히 있지 않다. 주위의 움직임을 빨아들이고 내뱉으면서 나 자신의 속도와 몸의 기울기를 조정한다. 감각을 튜닝한다. 안과 밖, 이쪽과 저쪽, 내 몸과 테이블 주위로 생겨난 경계는 일시적이며 유동적이다. 나는 내가 아닌 것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언제나 타자와 섞이면서 순간순간 ‘나’임을 유지한다.
‘나’라는 내적 일관성은 안정적인가? 내가 ‘나’라고 믿고 있는 것과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영역을 돌아본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나는 어떻게 나일 수 있는가? 무엇이 나를 형성하는가? 나는 왜 저기로 가지 않고 여기에 있는가? 하나 둘 질문을 던지는 목소리가 있다. 내 안의 내가 말한다. “너는 그 모든 걸 겪으며 살아왔다. 너의 몸이 기억하는 모든 것이 너를 이룬다. 너는 애초에 불순물이다.” 말끔한 옷차림 속, 표백 처리된 표면 아래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이 있다. 긴 장마 직후에 강을 본 적이 있는가? 강둑을 할퀴며 쓸려 내려온 흙덩이와 부러진 나뭇가지들, 이름 모를 부품들, 온갖 잡동사니가 둥둥 떠내려간다. 우리의 내면 세계도 크게 뒤집힌 강물과 같다. 그 수면 위를 부유하는 기억의 조각과 깊숙한 무의식의 침전물, 이 혼란스러운 혼합물이 ‘나’라는 존재를 구성한다. 의식의 강은 느린 듯 빠르게, 빠른 듯 느리게 흘러간다. 이 속도는 내가 어떤 몸으로 어떤 장소에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물리적, 심리적인 위치 변화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바뀐다. 내가 실제로 경험하는 시간은 언제나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백주미와 박성환이 공유하는 시간 감각도 이와 같다.
백주미의 단채널 영상 <Timescape>와 <Memoryscape_sky>는 서로 다른 속도로 흘러가며 교차하는 장면들의 콜라주다. 이는 회상의 결과물이 아니라 기억의 흐름 그 자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신비로운 기억의 작용을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풍경으로 전개한다. 이때 풍경은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다. 기차를 탄 사람이 마주하는 창밖의 풍경처럼, 내가 움직임에 따라 풍경도 움직인다. 때로는 빠르고 때로는 느리게. 또한 기억의 관찰자이자 탐험가인 ‘나’는 개인의 기억과 집단적 기억이 교차되는 지점들을 맞닥뜨린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 사회적 삶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지는 자전적 소설처럼, 백주미의 영상에서도 이와 유사한 움직임이 포착된다. 미시적인 감각의 흐름과 거시적인 세상의 흐름이 다양한 시점에서 종합된다. 가깝거나 먼 거리에서 기억을 바라보고 접근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런 초월적인 시점이 더욱 발전된 작업이 <Memoryscape_matrix>다.
박성환의 <낯선 곳 경로 찾기; 클라이머>와 <낯선 곳 경로 찾기; 자전거 라이더>, <횡단하는 스위머>는 물리적인 이동이 심리적인 이동이 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즉 그의 작업에서는 외부 세계를 탐사하는 움직임이 내면 세계를 탐험하는 움직임이 된다. 백주미가 기차를 타고 가거나 느리게 산책하며 관조하는 움직임을 보여준다면, 박성환은 신발을 신고 몸으로 직접 부딪히는 모험가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에게 내면 세계는 광활한 외부 세계만큼 낯선, 미지의 장소다. 그는 끊임없이 잠재의식으로 뛰어들어 헤엄친다. 두려움과 막막함을 물리치고 새로운 숨을 들이마신다. 그의 그림에는 위도와 경도가 표시된 여러 지도가 드리워진다. 이때 지도는 정해진 길을 안전하게 따라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찾아낸 그만의 경로, 무의식과 의식이 연결되어 생겨난 또 다른 길을 가리킨다.
박성환과 백주미는 각자의 방식으로 의식의 안전 지대, 즉 컴포트 존(comfort zone)을 탐사한다. 이 경계는 아슬아슬하다. 견고한 것 같으면서도 취약하고, 분명한 것 같으면서도 불분명하다. 두 작가는 의식화된 측면과 무의식에 남아 있는 측면을 모두 건드린다. 그럼으로써 나를 이루는 요소들을 꼼꼼하고 정직하게 들여다본다. 이렇게 스스로 행하는 정신분석은 마음의 움직임과 몸의 움직임을 동시에 포함한다. 따라서 ‘이동’은 두 사람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어다.
Artwork